
“안녕하세요~ 무진입니다 :)”는 내가 블로그 글을 쓸 때 처음 시작하는 문구다. 별로 안 궁금하겠지만, 부동산 책도 출간 마무리되는 즈음에 오늘은 내가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할 참이다. 주제는 ‘무(無)진(眞)’이다.
무진이란 단어는 인터넷 카페 등에서 활동명으로, 가명으로, 예명으로, 필명으로 그냥 닉네임 정도로 쓴다. 머~ 거창하게 문인이나 예술가들이 본명 대신 사용하는 우아한 별칭인 아호(雅號)도 아니다. 그냥 단어 뜻이 좋아서 나를 무진이라 칭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지인이 물어보는 경우는 있다.
“무진이 뭐야? 한자는 뭘 써?”
“응, 별거 없어. 없을 무(無)에 참진(眞)을 쓰는데, ‘진짜는 없다’는 뜻이야.”
대화는 상대방이 뭐라 해석하든 여기서 멈추는 편이다. ‘참’이 없는 행동한다는 얘기이지? ‘사기꾼’이란 얘긴지? 도무지 아리송할 거다. 상대방은 별 관심이 없으므로 나는 구구절절 그 설명까지 할 필요성을 못 느껴 대화는 여기서 끝이다. 하지만 오늘은 무진이란 별칭을 쓰는 이유를 설명하는 시간으로 할애한다. 아무도 안 궁금해하지만, 내 맘이니까 그냥 하기로 한다.
조금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20대 이야기다. 헤겔의 ‘변증법’이란 책을 접하고 ‘지적 오만’에 빠져 모든 걸 이 원칙에 대입해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곤 했다. 물론 앞선 블로그 글에 ‘현상을 이해하는 도구 변증법’이란 글도 쓴 적이 있다. 당시 변증법의 원칙은 이랬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양적 변화 후 질적으로 변화하다. 이 과정에서 전통과 반대되는 대립물이 섞여 ‘모순’이라는 투쟁 과정을 거친다. 정(正)반(反)합(合)”
이때 한참 써먹은 논리는 ‘자동차 타이어’ 얘기다. “타이어는 진짜 타이어인가?”, “타이어를 오래 사용해 타이어 역할을 못 하면 이것도 타이어인가? 아니면 단순한 ‘고무’라는 물질인가?”, “고무가 다 닳아 없어져 한 줌의 먼지로 되면 이것은 고무인가? 먼지인가?”
변증법 2원칙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내용이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세월이 지나면 그때 그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사람도 세월에 따라 대다수 세포가 죽고, 그 기반에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 물리적 변화를 겪는다. 하물며 사람의 생각도 변한다. 2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닌 듯 말이다. 조선시대 흐르는 강이 지금의 강과 같을까! 강물이 말라 대지로 변화하면 그걸 ‘강’이라고 부를까! 아니면 땅이라 부를까?
아무튼, 이외에도 변증법으로 풀어쓰면 논리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여기서 고만하기로 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현존하는 모든 물질, 정신은 앞으로 변질 또는 변화가 필연인 가짜다. 내가 이때부터 “무진‘이라는 단어를 썼던 이유다.
밑밥을 깔았으니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몇 가지 더 추가하자면, 나는 무신론자며, 변증법 등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학자도 아니며, 부동산 상식 쪼금 아는 평범한 사람이다. 잇님들, 지인이 모두 아는 그저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세계의 역사, 문화, 종교, 과학, 사람, 돈의 흐름을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라는 건 고백하고 간다. 특히, 종교는 참 흥미롭다. 유대교, 이스람교, 카톨릭, 기독교 모두 똑같은 ’구약 성서‘를 쓴다는 것도 무신론자인 내 관점에서 보면 참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인간 고타마 싯다르타가 창시한 불교도 오묘하다.
할 말이 많다 보니 자꾸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다시 중심을 잡고. 무진이란 별칭을 쓴 이유는 순전히 ’모든 것은 변한다는 변증법‘에 근거했다. 하지만 최근에야 초기 불교책을 접하면서 변증법과 유사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초기불교의 연기법(緣起法)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此無故彼無)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此滅故彼滅)“ <연기법>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독립된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은 그물망처럼 연결된 관계(Network)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통찰이다. 즉, 변증법 제1원칙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와 일백 상통한다.

‘연기법’의 논리적 결론인 제법무아(諸法無我)’를 그대로 해석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정된 나(我)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無)”는 뜻이다. 특히, ‘무(無)’라는 단어는 우리가 아는 ‘단순히 없다’라는 뜻이 아닌 ‘고정된 실체가 없다’라는 뜻이다. 후대에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반야심경으로 이어진다. 이 말은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게 제법무아의 핵심이다. 변증법 제2원칙과 똑같은 말이다.

헤겔은 불교론자가 아닐까 의심해본다. 더 깊이 파헤치면 모두 피곤하니 이쯤에서 사고를 멈추기로 한다. 하긴 유명 스님들이 평생을 연구해도 모자랄 이야기를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하자니 버겁기도 하다. 아무튼, 위대한 성인 고타마 싯다르타의 ‘연기법’과 헤겔이 인정한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논리는 내가 애용하는 ‘무(無)진(眞)’이란 닉네임에도 연결되니 그냥 만족하며 계속 사용하기로 한다.
”내가 활동명으로 사용하는
‘무진(無眞)’이란 세상의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한다,
고로 모든 것은 진짜가 아니다!”라는 내 개똥철학의 일부다.“